자연· 삶· 예술의 어우러짐을 이곳 매물도에서 느끼자! 빛과 바람의 섬! 매물도

자연· 삶· 예술의 어우러짐을 이곳 매물도에서 느끼자! 빛과 바람의 섬! 매물도


역사와전통

소매물도 사진

정착, 이주의 역사(정착사, 이주의 계기)

김재권 : “옛날에 다른 전설 이야기는 여기는. 역사가 소매물도나 매물도가 왜 매물도냐 하면 매물도 매물도 매물도 라는 게. 역사가 여기 처음에 와서 개간을 하고 처음에 이름이 붙여진 게 메밀 섬이라. 메밀 섬. 표준어로 하면 메밀인데 우리 경상도 사투리로 하면 매물 매물 매물 메밀이 아니고 매물 매물. 첨에 사람이 들어와서 개간을 해가지고 밭에 심은 곡식이 메밀이었어. 메밀꽃이 피면 하얗게 핀다고. 목화도 하얗게 핀다고. 목화도 많이 심구고 여기 내가 어릴 때만 해도 목화, 메밀을 많이 심었어. 메밀묵 해먹는다고. 목화는 솜틀해가지고 솜 해가지고 한다고 명주 명 옷 입는다고.”

김재권 : “내가 어릴 때도 목화를 많이 심고 메밀을 많이 심었어. 그래서 옛날 사람들이 저 바깥사람들이 보면 메밀꽃이라고 메밀만 많이 심는 섬이라고 매물이 됐고. 그래가지고 매물도가 됐다고. 옛날에는 메밀인데 우리는 매물이라고 한다고 매물 매물 말 그대로 매물섬이라. 메밀을 많이 심었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고 매물섬이라 그래. 표준어는 메밀인데. 우리 경상도 사투리로 매물이라 그래서 매물도라 그래.”

“우리 증조부도 여기 살았어. 증조부도 여기 살다 돌아가셔서 산소가 여기 있어. 너무 어려웠어. 처음에는 여기 사람들이 들어와서 바다에 나가서 고기나 잡아서 먹고 터전을 마련할라고 애를 써도 태풍이 오면 전부 황폐화되고 바람 불면 황폐화되고 진짜 농사짓기 힘들고 진짜 어려웠어. 옛날에는 어업도 하고 농사도 많이 있었어.”

“지금은 농사가 잘 안되니까 어업에 종사 한다고 전무 묵혀서 그렇지 옛날에는 전부 밭이었어. 산에 지금도 나무가 울창해지니까 그런데 옛날에는 밭이 엄청 많았어. 식구가 많으니까 한집에 보통 대가족이 살았어. 할머니 할아버지 삼촌 고모 또 뭐 아버지 어머니 있지만 우리 형제간 있으니까 한 집에 대가족이 보통 십 이명 십 삼명.. 그러니까 방마다 사람이 가뜩가뜩 차가 살았어. 가지가지 소도 키우고 염소도 키우고 바다에 가서 낚시도 하고 멸치도 잡고 또 뭐 그물도 해가 고기도 잡고 이래 살았어 그래 살았는데.”

쿠크다스cf로 유명한 소매물도, 파랑주의보, 남자,태어나다 많은 영화의 배경이 된 소매물도는 아름다운 풍광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있다. 대매물도와 비슷한 시기에 사람들이 들어왔고, 의식주를 해결하는 방법에서부터 장례풍습. 결혼 등 생활모습들이 대항, 당금마을과 유사하다. 이는 두 섬 사이에 자연적인 교류를 통해 서로의 생활을 공유하면서 삶의 모습들이 비슷해 진 걸로 보여진다.

“아니 임씨 .옥씨. 김씨 이래 살다가 처음에 이래 와서 저위에 학교터에 앞에보면 밭이 참 좋아 거기 옥씨가 살았어. 거기 학교터 쪽에 그럼 그쪽부터 마을이 제일 먼저 생겨가. 예예 그래가 생겨가지고 처음에 살기는 등대보이는 쪽에 집터가 있었어요.거기도 집이 세 가구가 살았어요. 철거를 해 넘어 와가지고 이쪽으로 와서 정착을 했는데 강씨도 오고 배씨도 오고 한씨도 오고 또. 이래 살았어요. 각성받이가 살았어요.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백한 칠십년 가까이 됐다고 보면 돼요.”

“이백년 가까이. 백 한 칠팔십년 안됐나. 그때만 해도 우리 어릴 때는 임씨나 옥씨는 여기 살기는 살았어도 시조들이 살다가 갔다 카는 얘기만 들었지 보지는 못했거든. 처음에 오기는 유배지가 아니고 귀양 와서 유배 되서 온 시초가 그런 건 아니라고 이런 작은 섬에는 대 매물도에는 모르지만 여긴 안 왔다고 봐야지.”

“여기는 사람이 적게 살다 보니까 큰 섬 대 매물도 저쪽에는 사람도 많이 산다고 괄시도 많이 받고 우리는 여서. 예 여기 사람들한테 바당도 다 뺐기고 생활권도 다 뺐기고 어촌계도 자기들이 다 해먹고 우리는 쪼끔만 남겨주고. 지금은 분할이 돼가지고 소매물도는 소매물도 전체가 하고 대 매물도는 대 매물도가 하고 그런데. 그런 구역싸움도 어려움이 참 많았어요. 저기는 사람이 많이 살고 여기는 사람이 많이 안사니까 .”

“나 시집올 때 있었어. 여기 바로 내려가면 쓰레기 같은 나무 같은 거 모아놓은데 서지가 있었어. 서당이. 우리 저 조카딸도 배우고 접장 데리고 와서 아들 그때 한문공부하고. 오래됐다. 시집올 때 학교가 있더라고 서당 있더라고. 우리 아저씨가 올해 살아있으면 나이가 팔십 다섯이거든 내가 팔십 서이고. 그 나이또래가 공부를 하더라고. 그때는 한문 공부, 학교가 없어서.”

“1970년대까지는 한 이 백 명 거의 살았어. 칠십 년대는 그렇게 안 살아도 육십년대까지는 그렇게 살았네. 칠십 년대 이후부터는 대가족이 소가족으로 바뀌고 육십 년만 해도 진짜 어려워가지고 대가족이 다 살았거든. 우리 열 몇 살 때는 전부 할아버지 다 같이 살았는데 칠십 년대 들어서는 조금 가족이 바뀌면서 나가고 한 채 한 채 불려나간 게 서른여섯 가구가 살았는데. 그때는 학생 수도 상당히 많았어.”

이석재 : “오륙도도 대 매물도에서 보면은 다섯 개 같이 보여. 딱 딱 떨어져가지고. 그래서 여기서 보면은 얼굴처럼 보인다고 해가지고 사람 얼굴. 바위마다가 사람 얼굴이 하나씩 박혀 있어요. 원래가 나무가 없는 섬은 섬이 아니에요. 그래서 무슨 도라고 못 붙여. 그니까 나무가 없으면은 우리가 물 밑에 보일랑말랑하는 거 여라고 하는데, 사실 저거는 여거든. 큰 여라고 보면 되는데. 여기서는 이 오륙도가 예전부터 삼여도라고 했거든. 그래서 거기에 대충 얼핏 들은 이야기가 그래. 제주도로 가면 여자 3명이 가다가다 지쳐가지고 망부석이 됐다,”

깊은 역사를 가진 등대섬

“등대섬은 일제시대 때부터 있었죠. 그니까 어떤 분들은 여기 김씨가 들어오기 전부터 있었다는 사람도 있고, 제가 알기로는 일본인 두 사람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일제 강점기 때 일본 쓰시마해에서 오는 배에 뱃길을 열어주기 위해서 지은...그 분들이 목적이 저 등대라. 그래야 이쪽으로 들어올 거잖아. 일본 애들 지도로 저 등대가 생긴 걸로 알고 있어. 일본 강점기 잔해 없애자 우리나라 붐이 한창 있었죠. 그때 허물었어요, 허물고 다시 지었어. 벼락을 맞아가지고 얘가 작살이 난거야. 낙뢰를 맞아가지고 얘가 한 번 더 부서졌어요. 그래 해서 3번째 지은 모습이 저 모습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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